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현대인들이 TV를 보는 행위가 원시인들이 불을 쳐다보는 행위와 같은 것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오늘 우리들은 원시인들과는 다른 압박에 시달린다. 아마 그들은 맹수들의 위협, 살인적인 기후 등으로 적지않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테다. 낮 동안 사냥을 하는 중에 쌓였던 마음의 짐들을 앞에 놓인 모닥불을 보며 잠시나마 내려놓거나 그것들로 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멍때림의 미학이라고나 할까? 실제로 멍때리는 행위는 우리의 마음에 안정을 되찾아주는 기능을 한단다.
과거 나는 열대어를 키운 적이 있었다. 열대어를 키우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물멍’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물멍이란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노니는 어항을 쳐다보며 멍때리는 행위를 말한다. 물고기들이 건강하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어항을 쳐다보고 있으면 아마 누구나 자연스럽게 물멍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 때는 몰랐지만 아마 물멍도 우리의 조상들이 불을 쳐다보면서 얻었던 위안을 주는 중요한 행위 중 하나였을테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조상들이 얻었던 멍때림을 경험하기 위해 함부로 모닥불을 피울 수는 없다. 주거지에 충분한 넓이의 정원이 있어서 아무때나 불을 피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주위를 조금만 둘러보면 모닥불이 잔잔하게 타는 듯한 움직임을 자연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반려식물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다. 내가 사는 집에는 다행히 밖으로 뻥 뚫린 발코니가 있어서 모든 반려식물들을 그곳에 둔다. 막혀있는 발코니가 아니기에 바람도 잘 통한다. 따라서 반려식물들이 충분한 바람을 맞으며 자라고 있다. 그리고 그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나는 자주 감상한다.
아무 생각 없이 바람에 흩날리는 식물들을 쳐다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 그리고 바람을 맞고 있는 식물들을 보면 원래 그들이 있어야할 자리에서 자라고 있는 것 같아서 또 좋다. 무슨 말이냐면 나는 식물은 충분한 빛, 바람, 물을 제공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식물이 자라기 제일 좋은 곳은 ‘노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화분에서 자라는 반려식물들의 경우도 최대한 노지와 같은 환경에서 자라게 하는 방법이 제일 좋다고 본다. 뻥뚫린 발코니에서 바람을 맞으며 흔들리는 식물들은 여러 면에서 내게 위안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