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의 삶, Living in Germany

[스마트폰 적게 사용하기] D+10,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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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적게 사용하기] D+10,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쉔쉔 2020. 6. 25.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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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나기!”
오늘은 둘째 아이가 아침에 예방접종을 했다. 우리 집에서 그나마 독일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은 나 밖에 없어서 내가 함께 다녀왔다. 우리 아들은 아침밥을 먹고 오전에 잠시 자는데 그 자는 시간에 주사를 맞았으니 얼마나 피곤하고 스트레스를 받았겠는가? 집에 와서 평소와 같이 않게 많이 보챘다. 우는 소리를 듣고 있느라 할 일이 제대로 안돼서 독일 드라마를 약 40분 간 시청했다.

자잘하게 폰을 사용했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아무 생각 없이 폰을 켜서 아이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괜히 살펴보았다. 약 5분이 채 안되는 시간 동안 그렇게 했는데 폰을 끄고 역시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정신을 아직 못차렸구나 싶기도 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던가? 역시 그 놈은 아주 자그마한 것에 숨어있었다. 나는 평소 별로 중요하지 않아보이는 것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입장인데 이번에는 그렇지 못했다.

저녁에 할 일을 어느 정도 끝내놓고 자리에 앉아서 잠시 쉬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라면 먹으면서 인터넷으로 영상을 좀 볼까? 오늘 자기 전까지만 보고 내일부터 다시 시작해볼까?’ 하지만 이 생각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그동안 내가 핸드폰으로 영상을 볼 때 어떻게 변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취침 시간은 늦어질테고 침대 위에서 핸드폰을 붙잡고 졸린 눈이 벌겋게 충혈될 때까지 영상에 빠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어제 늦게까지 봤던 영상들이 머릿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랜만에 핸드폰을 잡고 영상을 보는데 취한 나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가볍게 여길 것이다. 한편으론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들 것이다. 나 자신에게 또 다시 실망하고 다시 얼마 동안 스마트폰에 빠질 것이다. 나는 이 사이클을 굉장히 자주 반복했었다. 이번에는 스마트폰을 본 후에 정말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은 지금까지 항상 틀려왔다. 도박장에는 아예 근처에도 안가는 게 답이라는 말이 있다. 물론 스마트폰과 도박은 비교대상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나의 경우엔 도박장과 스마트폰은 거의 같은 이미지다. 아예 하지 않는 게 답이다. 전에 알코올 중독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 책에서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려는 중독자들에게 요구되는 것들 중 한 가지는 바로 이것이다. “첫 잔을 입에 대지 말기!” 어떤 이유에서건 첫 잔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이미 그를 막을 수단은 없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없는 삶을 살기엔 세상이 너무 불편해져 버렸기에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아니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게 답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초인적인 자제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과거로 회귀하려는 작은 마음과 작은 생각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나를 집어삼키는 거대한 괴물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럴 때일수록 나 자신과 깊이 만나기 위한 멍때림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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